[OBS플러스=정솔희 기자] 정우성이 감성 멜로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로 새해 첫 포문을 열었다. 정우성과 멜로, 심플하고도 올바른 조합에 많은 관객들이 설렌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우성은 진한 남자 영화 홍수 속에 지친 관객들을 향해 다시 한 번 깊은 눈빛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 "늘 사랑에 대한 결핍 있었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교통사고 후 10년 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깨어난 석원(정우성 분)과 그 앞에 나타난 비밀스러운 여자 진영(김하늘 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석원이 기억, 그리고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여타 다른 멜로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바로 그것이 정우성이 기꺼이 이 멜로를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궁금증은 석원의 기억으로 시작하지만 미스테리는 진영의 눈물이 담고 있다. 그 두 가지가 퍼즐 맞추듯 맞춰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국 영화에서는 이런 풀이 방식은 잘 시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시나리오상에서 그런 부분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석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캐릭터다. 지금까지 수많은 캐릭터들 속에서 새로움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정우성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인물로 비춰질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우성은 그것이 바로 배우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석원은 클리셰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 어떤 캐릭터도 사실상 새로운 건 없다. 결국 배우가 얼마나 나답게 표현하느냐갸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석원은 부분기억상실을 앓는다. 현실 속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진영이라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나를 잊지 말아요' 역시 진영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극중 석원은 관객들에게 말보다는 눈빛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정우성이 그리는 석원의 눈빛에는 석원이 갖고 있는 공허함, 과거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눈빛이야말로 정우성이 멜로를 만났을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눈빛에 대해 잘 의식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애정결핍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어릴때 가정환경이 넉넉치 못해서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과 부딪치며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야하는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늘 사랑에 대해 결핍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결핍으로 인해 항상 사랑을 갈구해서 느껴지는 눈빛이 있지 않나 싶다"
"어릴 적에 느꼈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그게 채워지면서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더욱더 결핍을 느낀다면 얼마나 외롭겠나. 나는 지금 그런 결핍이 많이 채워졌다. 온 국민이 내게 잘생겼다고 칭찬하지 않나. 세뇌시키는데 20년 걸렸다(웃음)"
# "'나를 잊지 말아요',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가는 영화"
정우성은 '나를 잊지 말아요'를 통해 처음 제작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서 그가 지켜본 '나를 잊지 말아요'는 어떤 작품이었을까. 우리에게 친숙한 공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더 가까운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제작자로서 첫 발을 떼는데 영리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나를 잊지 말아요'의 제작 과정에서 꼭 작품성을 보여줘야한다고 말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그걸 목표로 지향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영화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영화계가 관객들을 규정짓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영화 역시 관객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 때문에 영화가 꼭 흥행하리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다.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편안한 밸런스를 만들자는게 이 영화에 임했던 자세다"
멜로는 많은 영화 장르 중에서 여배우가 돋보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배우들 위주로 돌아가는 충무로에서 멜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장르가 됐다. 그런 가운데 여성 중심 영화에 대해 함께 고민해준 정우성의 선택은 더욱 반가운 일이다.
"대한민국 영화계는 여배우 영화가 없다. 하지만 영화계가 그렇게 얘기해서는 안된다. 그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깨려고 노력해야한다. 그건 선배들이 해야하는 일이고 배우들 스스로도 노력해야하는 것 같다. 영화인으로서 영화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이 영화를 만드는데 큰 요소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제작자 정우성의 다음 꿈은 무엇일까. 앞서 연출에 있어서도 꾸준히 관심을 내비치던 그였기에 감독 데뷔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상승됐다. 하지만 정우성은 거짓말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며 정확한 시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으로 직접 연출할 영화도 제작할 생각이다. 하지만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나의 입지를 더 굳건히 하고자 하는 욕구가 센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다음 행보도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정말 그럴 수 있는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다.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후배와 함께한 작업 환경이 나를 더 성장시킨 것 같다"
# "아픈 기억,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기억이라는 소재 때문에 정우성의 멜로 대표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정우성은 '나를 잊지 말아요'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임을 강조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다. 하지만 '나를 잊지 말아요'는 기억에 대한 두 남녀의 처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날 잊지 말아요'는 짜임새에 있어서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지만 오히려 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우성은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10년간의 기억을 잃은 남자 석원을 연기했다. 만약 그에게도 이런 영화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 이 순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행복은 선택이다. 배우로서 작품에 대한 만족도를 계속 물어본다. 작품에 대한 의미의 무게는 내 스스로가 정하는 거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봤을때 내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의 무게와 중심이 선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흥행된다면 기쁘겠지만 가치가 더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런 선택의 과정 속에서 내가 느낀 순간들의 감정을 잊고 싶지 않다. 얼마나 의미 있는 작업이었는가에 대한 의미가 주어졌을때 내게 큰 행복이 되는 것 같다"
그는 기억에 대해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아픈 기억마저도 결국 다 받아들여야한다는 의견을 단호하게 전했다. 하나의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픈 기억은 외면한다고 없어지는게 아니다. 설사 삭제 버튼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르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기억만 갖고 살면 면역성이 떨어져 배려가 없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웃음도, 눈물도 소중한 감정이다. 내 인생의 드라마가 희로애락이 있다는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우성의 멜로를 기다려왔다. 그는 대체 얼마나 사람들이 기다렸는지 예매율로 확인하겠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낯선 영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멜로 영화 속 사랑을 말하고, 느끼게 하는 정우성의 눈빛은 여전히 뜨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