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체로서 정우성(33),여전히 멋지다. 아무리 머리를 헝클어뜨려도,수염을 깎지 않아도,지저분한 옷으로 매력을 감추려해도,영화속 그의 눈빛은 사람을 끌어 들인다. 최근작 ‘데이지’를 비롯,이미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쳐온 정우성을 27일 중국 헝뎬(橫店)에서 만났다. 이 곳은 ‘영웅’ ‘무극’ 등 연간 100여 편의 중국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는 종합세트장. 지난해 10월 시작된 영화 ‘중천’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정우성은 이 영화에서 검술이 뛰어난 무사 이곽 역을 맡아 김태희 허준호와 호흡을 맞춘다. ‘중천’(제작 나비 픽처스·제공 CJ엔터테인먼트)은 ‘무사’ ‘비트’ ‘태양은 없다’의 조감독이었던 조동오 감독의 데뷔작으로 순제작비 110억원을 들인 대작이다.
이미 ‘무사’를 통해 중국 촬영 겸험이 있는 정우성은 여유있어 보였다. “와이어를 많이 사용하는 판타지 액션이라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모험하는 느낌이라 좋다”며 예의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왜 이 영화를 선택했냐고 물으니 단번에 “사람 때문”이라는 대답. 제작사의 공동대표인 조민환 김성수,그리고 조동오 감독과는 ‘비트’ 때부터 형 아우하며 지내온 사이다. “이 바닥에서 성격 안좋기로 소문한 김성수 감독님 밑에서 8∼9년을 버텨온 조감독님이 데뷔한다는데 제가 모른 척 할 수 없잖아요”라며 껄껄 웃는다. “제가 좀 그래요. ‘비트’ 찍다가 김감독님이 ‘태양은 없다’ 할래 해서 시나리오도 안 보고 그러지요 했고,고려 무사 얘기 있는데 장군할래 노비할래 해서 노비했던 게 ‘무사’이고요,‘중천’도 비슷하게 선택했어요.”
연기에 자신감이 붙어서인지,나이가 들어서인지 그에게 초조함이나 긴장은 없었다. “작품을 할 때마다 맡은 캐릭터를 발전시켜야 하는데 ‘중천’에서 역할은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몇 해전부터 입버릇처럼 말해온 감독에 대한 꿈을 물었다. “20대 땐 청춘물도 썼는데 지금은 하다보니 나이도 들고 그런 것 하기엔 시기를 놓친 것 같아요. 어떤 영화를 할지 막연하고 겁도 나지만 감독은 꼭 하고 싶다”는 그는 “요즘 고민은 기억과 인간에 대한 것”이란다. 자연스레 결혼 얘기가 나왔으나 피해간다. “30대 초반을 지나니 점점 일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겨요. 지금 마음으론 ‘중천’ 끝나면 내가 준비하는 영화 출연도 하고 감독도 하고,하반기엔 또 다른 영화도 출연하고 싶어요.” 사랑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사랑의 판타지를 갖게 하는 영화를 많이 하다보니 실제 인간 정우성의 현실속 사랑과는 차이가 많았어요. 20대에는 사랑에 대한 상상과 기대치가 컸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30대가 되니 사랑에 대해 겸손해집니다.”
영화배우 정우성을 고집해온 그 마음을 변함이 없을까. “제가 데뷔했을 무렵 TV 미니시리즈가 한창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1∼2편 찍어놨으면 한류스타 반열에 쉽게 들지 않았을까,후회도 되요(웃음). 그래도 전 계속 영화배우이고 싶어요. 음. 조조티켓 끊고 극장가서 영화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관객에게도 제 모습을 극장에서 보여주고 싶어요. 데뷔 때나 지금이나 일에 임하는 자세는 비슷해요. 처음보다 영화가 더 좋아요. 아직도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 볼 때마다 작은 컷들이 모여서 영화가 되는 것이 신기해요. 영화는 제게 감독이 되고 싶은 꿈도 주었고,제 일터는 말 그대로 꿈의 공장이지요.” 매너리즘에 빠질만도 한 데뷔 13년차,정우성은 이 말을 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하는 남자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