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40)은 흥행에 목말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필모그래피를 천천히 살펴보면 사실 이름에 비해 흥행작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1994년 데뷔해 벌써 20년 째 배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표작은 '비트'(1998) '태양은 없다'(1998)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 불과하다. '놈놈놈'은 송강호와 이병헌이 더 주목을 받았으니 이쯤되면 흥행에 목마를 만도 한 게 당연하지 않을까.
정우성은 '감시자들' 개봉을 앞두고 가진 여러 공식 행사에서 흥행을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전국 관객 900만 명이 넘으면 서울 명동에서 프리 허그를 하겠다고 공약을 내놓기도 헀다. 그의 진심이 통해서였을까. 지난 3일 개봉한 '감시자들'은 개봉 첫 주 전국에서 178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신호탄을 쐈다. 정우성은 왜 이리도 흥행에 굶주려 있을까.
정우성은 지난 1일 <스포츠서울닷컴>과 만난 자리에서 "작품 활동을 몇 년 동안 안 했는데 조바심 속에서 웅크렸던 것 같아요. 이 시간이 상당히 고독하고 외로웠어요. 물론 활동은 하지 않지만 배우다 보니 잘 되는 영화나, 관심을 받는 영화가 있으면 뭔가 '훅' 웅크렸던 것이 튀어올랐죠. '나도 배우인데, 나도 저 자리에 섰어야 하는데'하는 마음이 컸어요. 조바심이 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고 날개를 펼 준비를 했어요"라며 "요새 한국 영화 부흥기잖아요.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도 많고 하는 것마다 많은 사랑을 받곤 하죠. 나도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어요"라고 말했다.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한 인간, 배우 혹은 연출자로서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다졌다. 1973년생으로 올해 40살이 된 정우성은 지나온 세월만큼 많은 것을 연기에 담고 싶다며, 인간으로서 성장과 배우의 성장은 똑 닮아있다고 말했다.
"제가 벌써 40살이 됐네요(웃음). 인간으로서 성장과 배우로서의 성장은 당연히 맞물려 있어요. 내 20대를 돌이켜 보면 거칠었고, 30대는 무언가에 아는 척을 많이 한 것 같은데, 40대에 와서야 눈을 뜬 것 같아요. 그렇게 20년을 화려하면서도 거침없고 좌충우돌하면서 살았죠. '비트' 속 그 인물과 유사한 것도 같아요.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고 제 가치관 정립이 필요한데 그것을 JTBC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를 하면서 정립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 좋은 작품이었죠. 저는 언제나 늘 정우성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찌 보면 이제 알을 깨고 나온 것이란 생각을 해요."
드라마를 통해 가치관을 재정립한 그는 사실 SBS '아테나: 전쟁의 여신'(2010) JTBC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2011)에서 개성있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의 '내공'을 닦았다. 20년 차 배우로서 자리를 잡고 있는 그에게 어쩌면 '감시자들' 속 제임스는 딱 맞는 옷일는지도 모른다. 데뷔 후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정우성은 관객과 평단에 '딱 맞는 옷을 찾았다'며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정우성은 "민폐는 끼지 않아 다행이다"고 몸을 낮췄지만, 제 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호평을 받고 있는 데 대해)우선 다행이었어요. 우려했던 역을 잘 수행했구나. (설)경구 선배님과 (한) 효주 사이에서 민폐는 끼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촬영 분량이 작았지만,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있었지요. 특별할 것까지는 없지만 우선 시나리오가 굉장히 신선했고, 스릴러물이 갖춰야 할 긴장감이 시나리오에서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죠. (제임스의 눈빛과 입가의 살짝 드러나는 미소가 섬뜩했다고 하자) 정우성이 가진 미소지만 악역과 제가 잘 맞았던 것일까요?(웃음) 대사가 많이 없어서 눈빛으로 무언가를 많이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잘 표현된 것 같아요. 17대 1로 싸우는 장면은 오히려 수월하게 했죠. 이미 액션영화를 촬영해봐서 몸연기가 편했던 것 같아요."
정우성 개인뿐만 아니라 영화가 호평받는 데 대해선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조·단역들의 하나하나가 굉장히 적절하게 잘 사용됐어요. 이 영화가 가져야 할 성질이 잘 갖춰진 것 같아요. 깔끔하고 정갈하고 군더더기가 없죠. 쓸데없이 이해를 도우려고 불필요하게 들어간 것이 없어요. 관객들이 호기심을 갖고 궁금증을 유발하게 할 수 있죠"라며 "시각적인 멋과 캐릭터들의 모습이 잘 담겼어요. (캐릭터들의 과거가 궁금할 만큼 연결고리가 탄탄했다고 하자) 많은 분이 제임스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만약 '감시자들2'가 나온다면 제임스의 프리퀄은 어떨까요?"라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정우성은 인터뷰하는 내내 조용조용한 말투였지만, 강한 어조로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잘 풀었다. 재미있는 농담과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 SBS '런닝맨' 속 이미지가 언뜻 보인다고 하자, 정우성은 "('런닝맨'에) 잘 나간 것일까요"라고 히죽 웃었다.
"우선 잘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출연자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흥겹게 놀아야지 잘 만들어지는 예능 프로그램 같은데, 저는 다행히 '런닝맨'에 잘 적응했던 것 같아요.(웃음). 멤버들이 잘 받아줬기도 했죠. 달리는 장면에선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몸빼바지를 입고 몸개그를 하는 모습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했어요. 많은 분이 정우성 맞아? 라고 놀라곤 하는데 실제 정우성은 그런 모습이 많답니다. (고정출연에 대해 묻자) 제가 고정 출연할 수는 없잖아요. 그만큼 예능 프로그램에 적합한 사람도 아니고요. 예능인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제 분야에서 열심히 하렵니다."
오랜 휴식기를 갖고 나온 만큼 하반기에는 활발한 활동을 할 계획이다. 출연을 확정한 작품도 있고, 앞으로 연출과 출연을 할 작품도 있다. 많은 작품을 통해서 관객을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정우성은 자신이 꿈꾸는 더 높은 미래를 향해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준비하고 있다.
"하반기에 영화 '신의 한 수' 촬영을 시작할 것 같아요. 이범수 김인권과 같이 출연할 예정인데 이범수 씨와는 '태양은 없다' 이후 거의 15년 만에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라 기대가 커요. 제가 연출하고 출연하는 '나를 잊지 말아요'도 있어요. (본인이 출연하는 이유에 대해서) 출연료라도 아껴야죠. 저 작품 많이 할 생각이라니까요 제 작품에 제가 출연해야 합니다.(웃음) 결혼이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아직 끌리는 여인이 없네요. 할 작품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요? 당분간은 일만 할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