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트'(1997)로 단박에 청소년 우상이 된 정우성은 마흔 살이 됐는 데도 그 모습 그대로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으로 만났을 때보다 더 청춘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진한 코발트색 재킷이 그의 미소를 더욱 빛나게 한다.
정우성이 '놈놈놈' 이후 5년 만에 한국영화로 돌아왔다(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2009)에 출연했으나 이는 중국 영화다). 데뷔 20년 만에 처음으로 악역을 연기했다.
정우성이 악역을 맡은 영화는 설경구, 한효주와 함께 출연하는 '감시자들'(개봉 3일). 경찰청 내 특수조직인 감시반과 범죄조직이 대결을 펼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치밀한 범죄를 설계하는 조직의 리더 제임스 역을 맡았다. 정우성을 '감시자들'의 개봉에 앞서 만났다.
-오랜만에 한국영화에 출연한 것 아닌가?
▶(지금은 중단된)해외 합작영화를 준비하면서 의도치 않게 한국영화랑 멀어졌다. 그간 한국영화 시사회에 초청받아 가면 '내 집은 여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시자들'을 촬영하면서 집에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이전부터 '감시자들'의 제임스 역은 캐릭터 때문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매력이 있었나.
▶제임스라는 캐릭터 자체보다 그가 형성하는 극의 긴장감이 재미있었다. 그 캐릭터를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 따라 긴장감의 크기와 깊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다른 배우가 제임스를 연기한 걸 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제임스의 분량이 적어서 아쉬웠다. 원래 시나리오에 제임스의 과거 이야기가 없었나.
▶그런 장면을 넣었다면 원래 시나리오를 다 훼손하게 된다. '감시자들'은 하윤주(한효주)의 성장드라마다. 내가 출연하겠다고 하고 난 후 절대 제임스 스토리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전체 이야기를 위해 제임스가 죽는 장면을 너무 크고 거창하게 가지 말자고 했다.
-첫 악역이다. 그간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악역을 맡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배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역할의 사회적 영향을 고민하고 의식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는 무절제하게 악을 미화하기도 하는데, 어린 친구들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민감하게 생각했다. '비트'나 '태양은 없다'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그랬다. 제임스를 멋지게 하거나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지 말자고 했다. 제임스는 나쁜 놈일 뿐이다.
-골목길에서 다른 범죄조직과 떼싸움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롱테이크로 촬영된 이 장면은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 신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했다.
▶17대 1로 싸우는 그 장면은 11회 촬영했다. 영화 속에 장면은 10회째 테이크다. 격투 합도 많았고, 굉장히 빨리 지나갔다. 살짝 '올드보이'를 의식한 것 같다. 이 액션 장면이 관객들에게 회자하고, 깊게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설경구 씨는 정우성 씨가 출연한다는 말만 듣고 이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했다.
▶경구 형하고는 오래전부터 같이 한 번 하자 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서로 부딪치는 장면이 없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하자고 했다.
-'비트' 이후 지금까지 청춘 아이콘이었다. 멍에이기도 할 것 같다.
▶한 이미지를 갖게 되면 그 이미지에 맞대응하는 다른 대표작을 만들기 어렵다.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버텨 온 것 같다. 마흔 넘은 정우성이 앞으로 다른 대표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