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40)은 스스로를 "도전에 있어서 뻔뻔하고 겁이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영화배우라고 불리며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일 개봉한 영화 '감시자들'(감독 조의석·김병서)도 이런 도전의 연장선 상이다. '정우성'이란 이름만으로도 시나리오를 쌓아놓고 볼법한 스타성을 지녔다. 그럼에도 직접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청했다. 게다가 중심에서 한 발짝 포지션을 옮겨 상대역 한효주(26)를 빛냈다.
데뷔 20년 만에 처음 맡은 악역이기도 하다. 철저한 계획과 고도의 전략으로 매번 감시반의 추적을 따돌리는 범죄조직의 리더 '제임스'를 연기했다. 단 한 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어떠한 위기에서도 절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다.
서늘한 표정, 절제된 행동, 날카로운 눈빛은 '제임스' 그 자체다. 구둣방 액션 신을 마친 후 보스를 향해 웃는 모습은 이제껏 보지 못한 정우성의 새로운 얼굴이다. 왜 진작 악당이 되지 못했나 싶을 정도다. 정우성은 "천성이 '좋은 놈'이라 악역의 시나리오가 안 들어 왔나봐요"라며 크게 웃었다. "악역의 시나리오를 나에게 내보일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나쁜 놈'이 인정받기 시작한 지 불과 얼마 안 됐다"고 말했다.
"나는 늘 주인공이었던 사람이다. 주변사람들이 악역을 권할 수 없었던 입장이었다. 지금도 제임스가 주인공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제임스'가 마음에 들었다. "이 인물로 인해 영화에 풍기는 긴장감이 달라지고 영화가 변할 것 같았다"는 계산이었다. 악역을 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줘야겠다는 노림수는 아니었다. "긴장감을 내가 만들 수 있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정우성은 "내가 형성한 긴장감으로 영화가 풍성해지고 감시반인 (설)경구 형과 (한)효주, 준호(2PM)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 됐다"며 만족해했다. "영화를 하면서 주인공만 해야겠다는 고집을 부린 적이 없다. 잘 보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도 '좋은 놈'이 분량이 가장 적다. 이상한 놈이 나쁜 놈을 잡으니까. '새드 무비'도 단일 주인공이 아니었다. 같이 하면서 내가 채울 수 있으면 만족한다"는 마음이다.
물론, 출연 가능한 악역의 조건은 있다. '이해가 안 되는 천성이 나쁜 사람'이어야만 한다. 정우성은 "악역은 액션과 자극적인 비주얼, 행위들이 동반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짚었다. "악에 대한 이해로 연결될까봐"서다. "악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악의 본질은 악이다. 연결성을 단절시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엔딩을 화려하게 만드는 걸 경계했다. 관객들이 제임스를 봤을 때 '멋있다' 정도까지만 허용하길 바랐다. 악에 대한 행위가 이해가 되면 안된다"고 분명히 했다.
"앞으로도 악역을 맡는다면 '비현실적'이기를 바란다"는 주관도 내세웠다. "현실적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악역은 싫다. 내가 어려운 환경에서 이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았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정우성으로 성공하기까지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을 심어주고 싶다. 내가 현실에 기반을 둔, 이해 가능한 '나쁜 놈'을 연기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포기에 대한 수단으로 '악'을 사용할 것 같다. 자기 합리화의 동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
'제임스'는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조직을 멀리서 '감시'한다. 또 감시반의 눈을 역으로 감시하며 범죄를 저지른다. 큰 액션신도 없고 대사도 많지 않다. 정우성도 "움직임과 대사가 없다보니 목소리 톤을 잡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말이 많다는 것은 말 속에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사 속에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대사 톤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배우가 시나리오를 보면 '이 장면부터 찍으면 톤을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대부분 프로덕션 과정에서 배려를 해주지만 여의치 않게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이번 작품이 그랬다. 결국 비 내리는 장면을 먼저 찍었다. 제임스라는 친구가 본래 크게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면은 빗소리가 크고 공장 노이즈도 내렸다. 내 목소리가 나에게 조차 전달이 안 돼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감독님은 좀 더 일상적인 언어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상적인 언어는 '황 반장'과 '하윤주'가 하기 때문에 제임스는 좀 더 영화적으로 갔으면 했다. 감독님에게 말하고 영화적으로 톤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불친절 한 것 같다"는 불만에는 "오히려 그래서 더 매력이 있다"고 반박했다. '10년 만에 돌아왔다'는 대사, 런다화(58)와 마주치는 신, 이름에 왜 '제임스'인지 등 단서들은 던지지만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관객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영화를 봤을 때 아쉽다는 말을 듣는 것은 좋다. 캐릭터가 궁금증을 유발시켰다는 것이니"라며 오히혀 쾌재를 부른다. "제임스의 이해를 구하는 전조는 필요가 없다. 나쁜 놈이 그냥 나쁜 짓을 한 거다."
정우성은 "사람들이 프리퀄을 기대한다. 나중에 나올 수도…. 하하하. 하지만 제임스가 이해 가능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것이다. 하찮은 일(은행털이)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좋게 봐주는 것 같다. 감사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