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40)이 새 영화 <감시자들>에서 맡은 ‘제임스’는 악한이다. 범죄를 구상하고, 경찰 감시반 추적을 교묘하게 따돌리며 조직원들을 단속한다. 정체가 드러날 위험에 노출되면 조직원을 바로 제거하고, 실수를 범한 조직원은 응징한다. 악행을 만년필, 테이프 같은 일상적 도구로 저지르는 점이 더 큰 두려움을 준다. 이런 악한을 충무로의 대표적인 미남 스타 정우성이 맡았다는 점이 더 큰 재미다.
-데뷔 20년 만에 첫 악역 연기다.
“악역보다는 존재감에 끌렸다. 많이 나오지 않지만 존재감을 발휘한다. 다만 하찮게 그리고 싶었다. 제작진에게도 ‘정우성이 한다고 특별하게 만들어주지 말라’고 부탁했다. 마지막 등장도 더 안 좋은 꼬락서니로 가고 싶었다. 범죄자일 뿐이니까(웃음).”
-<검우강호>나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과는 다른 액션이라 연습이 필요했을 것 같다.
“이런 저런 작품으로 액션에 필요한 주먹질은 이미 연습돼 있다. 이번엔 여럿이 함께하는 ‘합’이 중요했다. 상대가 어떻게 힘을 쓰느냐를 보면서 힘의 균형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았다.”
- 2PM의 준호와 맞대면이 인상적이었다.
“준호는 (가수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에서 공연하고 지친 몸으로 촬영장에 오는데, 몇 시간씩 기다리다 날씨 때문에 못 찍고 간 적도 있다. 그런데 ‘선배님 괜찮습니다’라고 하니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촬영장에선 주인 의식이 필요하다. 주어진 배역이 끝이 아니라 주인공이라는 생각 말이다.”
-언제부터 주인 의식을 갖게 됐나.
“처음부터. 영화 현장에 처음 딱 왔을 때 ‘이 집이 내 집이네’ 싶었다(웃음). 무척 행복해서 그것이 내 것이었으면 했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첫 촬영 현장은 어땠나.
“첫 작품인 <구미호>에서 독고영재 선배가 저승사자 역을 했는데 나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몸도 풀리지 않아 나무토막 같은, 혈기만 왕성한 신인이 앞뒤 재지 않고 덤비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나. 믿음을 주고 싶어서 ‘저 잘 합니다’를 외치며, 코 앞만 살짝 스치면 되는 액션을 하다 진짜 코를 쳤다. 가파른 계단이 있는 극장에서 구르는 장면이 있었다. 김성수 감독이 ‘구를 수 있겠느냐’고 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요’라면서 뒤로 막 굴렀다. 몸이 아픈지도 몰랐다.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촬영 현장은 설레고 좋다.”
-초심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현장에 나와야 자아를 실현할 수 있으니 촬영이 즐겁고 편하다. 20년을 했지만 뒤돌아 보면 왜 더 열심히 많이 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이제 조금 알았으니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하고 싶다.”
-이제 조금 알았다는 의미는 뭔가.
“연기를 좀 알겠다는 것이다. 20대 때는 내 눈이 감겨 있는 것도 모르고 다 보인다고 덤빈 거 같고, 30대 때는 아는 척만 했다. 40이 되니까 뭔가 좀 깨닫게 된다. 지금까진 (그냥) 나이를 먹었지만, 이젠 스스로 (나이를) 먹고 싶다.”
-뮤직 비디오, 단편영화 등을 직접 연출했는데, 앞으로 연출 계획은.
“출연을 먼저 하고, 천천히 연출작도 준비하겠다. 시나리오를 하나 써놓았다. 액션이 주가 되지만 사랑을 소재로 한다. 내가 액션이나 멜로도 하니까 액션 멜로도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민하는데, 고민을 해결할 ‘짬짜면’인 셈이다.”
-현실에서 멜로는?
“연기 욕구가 더 커서 일에 대한 계획만 많다. 사랑이란 게 상대가 나타나야지,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여자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다가오는 사람도 없다.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도 있지 않나(웃음).”
-공부 계획은 없는지.
“학창 시절이 짧다 보니 책보다 현장에서 습득한 나만의 이론이 있다. 이론을 책으로 공부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 새로운 스토리를 구상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그리는 시간이 내겐 더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