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늙지 않고 만년 청춘일 것만 같던 '만인의 오빠' 정우성도 어느덧 불혹이다.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그도 이제 아저씨로 불릴 때가 온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정우성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멋있다. 거기에 나이가 주는 중후함까지 더해져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중년에 빠지면 답도 없다는 말이 격하게 와 닿는 순간이다.
정우성은 4년 만에 범죄 액션영화 '감시자들'(조의석·김병서 감독)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컴백한 것도 팬들은 반가운데 데뷔 이래 첫 악역을 맡아 소름 끼치는 연기 변신까지 꾀해 더욱 시선을 끌었다.
그가 20년 만에 악역을 맡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악에 대한 미화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우성을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1997년 작 '비트'(김성수 감독)가 자신에겐 트라우마가 됐다는 고백이다.
"'비트'에서 맡은 역할이 불량 청소년이었어요. 그래서 담배도 피우고 오토바이도 탔죠. 그 당시에 그게 멋있어 보였나 봐요. 어린 친구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고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도 났죠. 충격적이었어요. 전부 나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았죠. 그때 느꼈어요. 영화를 하는 사람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란 걸 알았어요."
악에 대한 조명을 어느 선까지 그어야 할지,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다는 게 그의 속내다. 어지간히 악역에 대해 데였나 보다. 20년간 악인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 거창했지만 진심이었다.
"그동안 조폭영화도 많이 들어왔죠. 미국 영화처럼 악역에 대해 확실한 벌을 주고나 권선징악이 뚜렷했다면 아마도 했을 거에요.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는 꼭 그런 결말만 있지 않잖아요.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못했네요. '배드 보이 콤플렉스' 열풍도 한몫한 것 같아요. 사실 전 나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데 다들 나쁜 남자를 좋아하더라고요. 하하."
그런 그의 결심을 무너뜨린 '감시자들'이 명약이었나 보다. 정우성의 제임스를 못 봤다면 억울해서 어찌할 뻔 했을까? 그는 제임스가 하찮은 범죄자라서 좋았고 악인을 미화시키는 부분도, 연민도 가질 필요 없는 악랄한 놈이라는 부분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악역을 통해 변화를 꿈꾼 정우성. 물론 20년 만에 연기변신도 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30대의 방황을 멈추고 싶었다고. 정우성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치열했던 30대를 보냈고 좀 더 어른스러운 40대를 맞이하고 싶어했다.
"30대는 방황했죠.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 게을러지기도 했죠. 인생은 언제나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더라고요. 일단 제 안의 상처를 이겨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저도 변신이란 걸 해보고 싶었어요. 때마침 '감시자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였죠. 외로웠어요. 영화를 찾는 데까지…. 30대까지 실컷 방황했으니까 이제 방랑해야죠. 즐거운 방랑(웃음)."
